김해 김씨

한국의 성씨 중 하나

김해 김씨(金海 金氏)는 경상남도 김해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관향으로, 금관가야(金官伽倻)의 건국시조 수로왕(金首露)을 시조로 한다.

김해 김씨
金海 金氏
김해 김씨의 종문
나라대한민국
관향경상남도 김해시
시조김수로(金首露)
중시조김유신(金庾信)
집성촌대한민국 대한민국
경기도 성남시·포천시·양평군
전라남도 진도군·신안군·해남군·영광군·완도군·나주시[1]·무안군·영암군[2]·광양시·화순군·여수시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남원시·고창군·부안군·김제시
경상북도 포항시·김천시·청도군[3]·상주시·경산시·구미시·예천군[4]
경상남도 창원시·진주시·창녕군·김해시·사천시·남해군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인제군·정선군·철원군
충청남도 부여군·금산군·공주시·논산시·보령시·아산시
충청북도 청원군·옥천군·괴산군
광주광역시 광산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용강군[6]
함경남도 북청군·홍원군
함경북도 나진시·경성군·명천군
주요 인물김유, 김저, 김수연, 김극일, 김일손, 김완, 김경서, 공빈 김씨, 김예직, 김우항, 김홍도, 김만덕, 김대건, 김원근, 김두봉, 김원봉, 김상옥, 김준연, 김현철, 김철호, 김성곤, 김종오, 김대중, 김종필, 김혁규, 김주열, 김형오, 김부겸, 김홍일, 김홍업, 김홍걸
인구(2015년)4,456,700명 (1위)
비고김해김씨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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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국수로왕(首露王)을 시조로 한다. 서기 42년(중국 후한 건무 18) 3월 가락국(駕洛國)의 아홉 촌장이 구지봉(龜旨峰) 산정에 모여 나라를 통솔할 군장(君長)을 얻기 위해 하늘을 향해 의식(儀式)을 올리자 하늘에서 여섯 개의 황금알(卵)을 담은 금합(金盒)이 내려와 다음날 여섯 알이 여섯 동자(童子)로 변하여 제일 먼저 나온 동자를 수로(首露)라고 이름짓고 금합(金盒)에서 태어났다하여 성(姓)을 김씨(金氏)로 하니 그가 바로 김해김씨의 시조(始祖)인 김수로왕(金首露王)이다. 나라이름을 대가락(大駕洛)으로 정하고 아유타국(阿踰陁國: 고대 인도의 국가)에서 바다를 건너온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를 왕비(王妃)로 맞아 10명의 왕자(王子)와 2명의 공주(公主)를 두었다. 그후 10대 구형왕(仇衡王)이 532년 (법흥왕 19) 신라에 항복하고 상등(上等)의 작위(爵位)와 가락(駕洛)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 받았으며, 그의 아를 김무력(金武力)이 각간(角干)를 역임했다.[7]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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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장군상

중시조 김유신(金庾信)은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의 증손으로, 신라 무열왕(武烈王)과 함께 삼국통일의 대업(大業)을 달성한 명장(名將)으로 무열왕의 딸 지소부인(智炤夫人)과 혼인하였고 최고 벼슬 태대각간(太大角干)에 이르렀고, 사후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되면서 김해김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그의 조부는 신라 진흥왕때 뛰어난 무장(武將)이며 각간(角干) 벼슬을 지낸 김무력(金武力)이고, 그의 아버지는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장인이며 당대의 이름난 장군인 김서현(金舒玄)이고, 그의 어머니는 진흥왕의 아우인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부인(萬明夫人)이다.

김해김씨는 신라의 왕실과 혼연을 맺음으로써 신라에서 귀족으로 극진한 대우를 받아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번성하여 왔다. 혜공왕이 피살 당해 무열왕계의 왕통이 단절되고 다른 진골 귀족들로부터도 다시금 경원 당하면서 심지어 6두품으로 추락했다.

23세손 김상좌(金商佐)가 왕건을 추대하고 고려 건국에 공헌을 해 삼중대광(三重大匡) 개국원훈(開國元勳)에 올른 이래 그 후손들이 문무명신(文武名臣)을 배출한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 위세를 떨쳤다. 고려 시대에만도 정승급 15명을 비롯하여, 명신·공신 10여 명과 장군 8명, 제학 11명 등 숱한 인물을 배출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대게 조선 개국에 반대하는 고려 충신들이 많았으며 무오사화(戊午士禍)[8][9]를 비롯한 정치적 사건들에 휘말려 쇠락을 면치 못했다. 역대 정승에서도 숙종조의 김우항(金宇抗) 한 사람뿐이었다.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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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金海)는 경상남도 김해시(金海市)의 지명이다. 낙동강(洛東江) 하구 남서쪽에 위치하여 가락국(駕洛國)의 중심지로 발전하여 왔다. 532년(신라 법흥왕 19) 신라에 병합되어 금관군(金官郡)이 되었다. 680년(문무왕 20)에 금관소경(金官小京)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김해소경(金海小京)으로 바꾸어 양주(良州)의 관할로 두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김해부(金海府)로 개칭되었고 임해현(臨海縣)으로 다시 강등되었다가 곧 임해군으로 승격되었다. 995년(성종 14)에 김해안동도호부(金海安東都護府)로 개칭하여 영동도(嶺東道)에 속하였다가 1012년(현종 4) 김해군방어사로 강등되었으나 1018년부터는 의안군(義安郡: 昌原)·함안군(咸安郡)·칠원현(漆原縣: 漆原面)·웅신현(熊神縣: 鎭海)등을 영현으로 삼았다. 1270년(원종 11) 방어사(防禦使) 김훤이 인접지역인 밀성(密城)의 난을 평정하여 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1293년(충렬왕 19) 현으로 강등되었다. 1308년 금주목(金州牧)으로 승격하였으나 1310년(충선왕 2) 김해부(金海府)로 격하되었다. 1413년(태종 13) 김해도호부로 승격되어 세조 때 진(鎭)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김해군이 되었고, 1981년 김해읍이 김해시로 승격하여 분리되었으며, 1995년에는 김해군을 통합하였다.

세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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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수로왕
金首露王
2
도왕
道王
2
허씨
許氏
2
하동칠불
河東七佛
3
성왕
成王
4
덕왕
德王
5
명왕
明王
6
신왕
神王
7
혜왕
惠王
8
장왕
莊王
9
숙왕
肅王
10
양왕
讓王
10
김탈지
金脫知
11
김세종
金世宗
11
김무력
金武力
11
김무득
金武得
금릉 김씨 시조
12
김솔우
金率友
12
김서현
金舒玄
13
흥무대왕
興武大王
김유신
金庾信
13
김흠순
金欽純
13
김보희
金寶姬
13
문명왕후
文明王后
14
김삼광
金三光
14
김원술
金元述
진주 김씨 시조
14
김원정
金元貞
14
김장이
金長耳
14
김군승
金軍勝
14
김반굴
金盤屈
15
김윤중
金允中
15
김윤문
金允文
15
김선
15
김영윤
金令胤
16
김장청
金長淸
16
김암
金巖
17
김웅원
金雄元
17
김웅윤
金雄允
18
김경주
金擎柱
19
김성해
金成海
19
김성대
金成垈
20
김정철
金挺喆
21
김수윤
金琇胤
21
김옥윤
金玉胤
22
김천수
金天授
22
김천여
金天與
23
김상좌
金商佐
24
김호
金浩
25
김화제
金華齊
26
김진유
金振酉
27
김승의
金承意
27
김계의
金繼意
27
김진의
金進意
28
김천정
金天精
29
김항령
金恒齡
30
김수성
金洙聖
31
김상흠
金商欽
31
김상현
金商賢
31
김상인
金商寅
32
김성우
金成雨
33
김일서
金一曙
34
김광국
金匡國
34
김안국
金安國
35
김종백
金宗栢
36
김수
金繡
37
김이탁
金以琢
38
김서천
金瑞天
38
김서지
金瑞地
39
김양철
金陽喆
40
김시추
金是秋
41
김진국
金鎭國
41
김정국
金定國
42
김규상
金奎祥
43
김도협
金道浹
44
김탕우
金湯雨
44
김상우
金商雨
45
김만서
金萬瑞
46
김사맹
金師孟
47
김상주
金相宙
48
김방직
金邦直
48
김용직
金龍直
49
김익섬
金益銛
49
김관
金管
판도판서공파
(삼현파)
50
김주국
金柱國
51
김절경
金晢卿
51
김목경
金牧卿
금녕군파
(경 파)
51
김익경
金益卿
감무공파
(사군파)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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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파(京派)[금녕군파(金寧君派)] - 김목경(金牧卿)
    • 참판공파(參判公派) - 김영견(金永堅)
    • 횡성공파(橫城公派) - 김영서(金永瑞)
    • 안경공파(安敬公派) - 김영정(金永貞)
    • 석성공파(石城公派) - 김영순(金永純)
    • 호참공파(戶參公派) - 김진서(金震敍)
    • 참찬공파(參贊公派) - 김달문(金達門)
    • 봉상공파(奉常公派) - 김현문(金顯門)
    • 밀직사공파(密直使公派) - 김창문(金昌門)
    • 문간공파(文簡公派) - 김저(金著)
    • 밀직공파(密直公派) - 김수(金秀)
    •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 김란(金蘭)


  • 사군파(四君派)[감무공파(監務公派)] - 김익경(金益卿)
    • 생원공파(生員公派) - 김련(金鍊)
    • 도총관공파(都摠管公派) - 김추(金錘)
    • 생원공파(生員公派) - 김구(金銶)
    • 찬성공파(贊成公派) - 김석(金錫)
    • 상서공파(尙書公派) - 김감(金鑑)
    • 공간공파(恭簡公派) - 김조(金銚)


  • 삼현파(三賢派)[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 - 김관(金管)
    • 군수공파(郡守公派) - 김건(金建)
    • 참판공파(參判公派) - 김맹(金孟)
    • 한림공파(翰林公派) - 김용(金勇)
    • 진사공파(進士公派) - 김순(金順)
    • 녹사공파(錄士公派) - 김인(金靭)
    • 진의공파(進義公派) - 김현(金鉉)


천여(天與)계

  • 첨정공파(僉正公派) - 김덕휴(金德休)
  • 충경공파(忠景公派) - 김대리(金大理)


진의(進意)계

  • 운은공파(雲隱公派) - 김대진(金大震)
  • 율은공파(栗隱公派) - 김손(金遜)
  • 승지공파(承旨公派) - 김간(金侃)
  • 문경공파(文敬公派) - 김탁(金琢)
  • 부사공파(府使公派) - 김근(金瑾)
  • 한림공파(翰林公派) - 김관(金鑧)
  • 충정공파(忠貞公派) - 김구(金球)
  • 도사공파(都事公派) - 김연(金璉)
  • 승정공파(承政公派) - 김현(金現)
  • 휴은공파(休隱公派) - 김호(金琥)
  • 장사군파(長沙郡派) - 김선(金璘)
  • 도사공파(都事公派) - 김린(金隣)
  • 대제학공파(大提學公派) - 김득하(金得河)
  • 도총관공파(都總管公派) - 김경신(金敬臣)
  • 동정공파(同正公派) - 김호(金灝)
  • 판윤공파(判尹公派) - 김경보(金敬輔)


상현(商賢)계

  • 판전공파(判典公派) - 김명택(金明澤)
  • 판서공파(判書公派) - 김불비(金不比)
  •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 - 김만희(金萬希)
  • 참봉공파(参奉公派) - 김인서(金鱗瑞)
  • 숭정공파(崇政公派) - 김종정(金宗貞)
  • 상서공파(尙書公派) - 김홍보(金洪寶)
  • 부호군공파(副護軍公派) - 김천익(金天翼)
  • 판결사공파(判決事公派) - 김을동(金乙棟)
  • 단련사공파(團鍊使公派) - 김경(金慶)
  • 진사공파(進士公派) - 김건(金虔)
  • 충정공파(忠精公派) - 김이장(金以障)


상인(商寅)계

  • 유수공파(留守公派) - 김운(金芸)


서지(瑞地)계

  • 록사공파(錄事公派) - 김소(金炤)


정국(定國)계

  • 판서공파(判書公派) - 김유공(金維公)
  • 부호군공파(副護軍公派) - 김거공(金巨公)
  • 우후공파(虞侯公派) - 김옥진(金玉振)
  • 승사랑공파(承仕郞公派) - 김지서(金之瑞)
  • 부정공파(副正公派) - 김평(金平)
  • 판서공파(判書公派) - 김첨검(金添劍)

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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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파(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 사군파(四君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 삼현파(三賢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 문경공파(文敬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 율은공파(栗隱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 도총관공파 서강공파(都總管公派 西岡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 도총관공파 축은공파(都總管公派 築隱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과거 급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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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문과 128명, 무과 536명, 사마시 471명, 역과 59명, 의과 39명, 음양과 15명, 율과 33명, 주학 8명이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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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 김무력(金武力): 가야국 제10대 구형왕(仇衡王)의 셋쩨 왕자. 신라 신주군주(新州軍主)ㆍ각간(角干). 관산성 전투 승리하였다.
  • 김서현(金舒玄): 신라 대량주총관(大良州總管)ㆍ각간(角干)
  • 김유신(金庾信): 삼국 통일을 이끈 명장. 신라 태대각간(太大角干). 사후 흥무대왕(興武大王)에 추존되었다.
  • 김흠순(金欽純): 신라 대당 총관(大幢摠管). 삼국 통일의 공신이다.
  • 김삼광(金三光): 신라의 대당 군사외교가이다.
  • 김반굴(金盤屈): 신라 무열왕 때의 화랑이다. 황산벌 전투에서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전사하였다.
  • 김시득(金施得): 신라 문무왕 때 수군지휘관. 기벌포(伎伐浦)에서 설인귀(薛仁貴)의 당군을 격퇴하였다.
  • 김원술(金元述): 매소성(買肖城)에서 당군과 전투에서 승전을 이끈 장수이다.
  • 김영윤(金令胤): 신라 신문왕 때 장군. 고구려 잔적(殘賊) 보덕성(報德城)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황금서당보기감(黃衿誓幢步騎監)으로 토벌하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 김암(金巖): 신라 중대의 무관·방술가(方術家).
  • 김웅원(金雄元): 완산주도독(完山州都督). 순천장군으로 당나라 이사도(李師道)의 난과 김헌창(金憲昌)의 난을 평정한 장군.
  • 김천수(金天授): 신라 효공왕 11년에 시중(侍中)으로 당에 파견되어 황소의 난을 만나 전사하였다. 사후 대각간(大角干)에 봉했다.
  • 김상좌(金商佐):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를 개국하고 삼중대광(1품관)를 지냈다.
  • 김호(金浩): 한림학사ㆍ좌간의대부(정4품)ㆍ대학사(종2품) 역임. 101세 장수
  • 김진유(金振酉): 광정대부ㆍ도첨의중찬ㆍ수문전대제학ㆍ판전리사사ㆍ세자사 역임. 광종이 과거제 시험담당관을 승려 혜거(惠居)를 임명하자 반대했지만 왕이 듣지 않아 금마저에 은거했다.
  • 김승의(金承意): 검교신호위상장군(撿校神虎衛上將軍). 승려 혜거를 쫓아내려했으나 파직 당했다.
  • 김천정(金天精): 벼슬은 병부상서를 지냈으며, 거란에 가서 화친을 청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 김택정(金澤精): 삼중대광ㆍ문하시중
  • 김항령(金恒齡): 검교신호위상장군(撿校神虎衛上將軍)으로 여진족과의 전투에 참전하였고 태평산에 은거하였다.
  • 김수성(金洙聖): 벼슬은 호부상서를 지냈으며, 강감찬(姜邯贊) 장군과 함께 여진족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 김상흠(金商欽): 고려 현종 때에 대사성(大司成). 최치원(崔致遠) 문창후(文昌候)에 봉하고 최치원의 부인을 선성묘에 모시라는 상소를 올리고 이후에 금주백(金州伯)에 봉해졌고 대제학이 되었다.
  • 김경신(金敬臣): 충렬왕 때 진변총관부군총관(鎭邊總管部軍總管)을 지냈다.
  • 김원현(金元鉉): 충렬왕 때 광정대부 첨의평리 상호군 영부사(匡靖大夫僉議評理上護軍領府事)을, 충선왕 때 양산방어사(梁山防禦使)로서 왜적(倭賊)을 물리친 공으로 양산춘추원(梁山春秋園) 장충단(奬忠壇)에 삼조의열(三朝義烈)로 배향
  • 김수(金繡): 검교신용호위상장군(檢校神龍虎衛上將軍)으로 왕의 밀유(密諭)로 이자겸(李資謙)을 영광으로 유배시켰다.
  • 김이탁(金以琢): 고려 의종정중부(鄭仲夫)가 난을 일으켜 사대부를 모조리 살해해 시체가 길거리에 가득 차자 시신을 수습하기를 청하다 정중부 일당에게 살해 당했다.
  • 김서천(金瑞天): 경대승(慶大升) 장군과 함께 정중부를 죽여 부친의 원수를 갚았다.
  • 김보(金普): 공민왕 때 수종공신, 좌시중을 지낸 문신.
  • 김유(金庾) : 공민왕 때 강릉도병마사(江陵道兵馬使)가 되어 홍건적을 대파하여 이듬해 서울을 수복한 공으로 이등 공신, 김용(金鏞)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일등 공신이 되었다.
  • 김관(金管): 판도판서를 역임하고 유학을 진흥하는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 김구(金球): 동덕보리공신(端誠守義同德輔理功臣)에 녹훈되며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 김만희(金萬希): 조선 개국 후 출사를 거부하고 제주에 유배 되어, 애월읍 곽지리에 은거한 절신(節臣).[10]
  • 김방려(金方勵): 판종부사(判宗簿事). 정몽주(鄭夢周)와 이인임의 친원 정책에 반대하다가 김해 퇴은에 유배되었다. 위화도 회군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웠다.
  • 김탁(金琢): 고려 문하시중. 최유의 난을 평정한 공민왕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 김선(金璇): 고려 공민왕 때 공을 세워 장사군(長沙君)에 봉해졌다.
  • 김소(金炤): 문하시중녹사. 선죽교에서 정몽주(鄭夢周)와 함께 이방원이 보낸 하수인 조영규에게 피살되었다.
  • 김손(金遜): 시중 최영(崔瑩)의 생질. 폐왕 우왕을 만나 이성계를 살해하라는 부탁을 받고, 이성계의 집에 잠입하여 암살하려다 실패해 ‘김저의 옥사’가 일어났다.
조선
  • 김조(金銚): 세종 때 집현전수찬을 거쳐 예조판서에 올랐으며, 직제학에 역임할 때 장영실(蔣英實)과 함께 간의대, 자격루, 혼천의 등을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 김수연(金壽延): 조선 전기 장군으로 김종서 등과 더불어 6진을 개척하고 계유정난으로 단종이 유배지 영월에서 비참하게 죽자 6일간 단식 끝에 자결한 충신이다.
  • 김극검(金克儉): 조선전기 호조참판, 동지중추부사,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 김계금(金係錦): 조선전기 지평을 거쳐 의성현령 역임하였다. 사육신 사건으로 벼슬을 그만 두고 낙향하였다.
  • 김자정(金自貞): 조선 전기의 문신. 단종·세조·성종·연산군 대에 여러 관직을 지냈으며, 중국어에 능통하여 외교업무를 능숙하게 수행하였다.
  • 김극일(金克一): 어릴 때부터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님을 섬겼으며 어머니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 낫게 해 드리고, 아버지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변을 맛보았다고 전해진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시묘살이를 할 때 호랑이가 옆을 지켰다. 사시(私諡)는 절효(節孝)이다.
  • 김일손(金馹孫): 춘추관 사관(史官)으로 있으면서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에, 이극돈의 비행(非行)을 그대로 쓰고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실었다고 하여 무오사화 때에 처형되었다.
  • 김구(金龜): 의정부좌참찬(議政府左參贊)에 이르렀으나 이극돈(李克墩)의 무고로 창원에 유배되었다.
  • 김대유(金大有): 기묘사화가 일어나 칠원현감(漆原縣監)을 마지막 벼슬로 사직하고 청도의 운문산에 들어갔다.
  • 김예직(金禮直): 임진왜란선조의주까지 호종했으며,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를 역임했다.
  • 김수원(金秀源): 임진왜란때 내금위장으로 선조를 호종하여 호성공신이 되고 공조판서에 추증되었다.
  • 김련광(金鍊光): 회양부사(淮陽府使)로 있던 중 임진왜란을 때 성문을 방어하다 왜적에게 피살되었다.
  • 김축(金軸):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솔과 후학을 거느리고 김천일(金千鎰)의 막하에서 활약하다 이듬해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했다.
  • 김사모(金嗣牟):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사 송상현(宋象賢)의 부장으로 동래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 김세근(金世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금산 전투에서 고경명(高敬命)과 함께 순절했다.
  • 김인갑(金仁甲):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해 진주성 전투에서 최경회(崔慶會)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 김경서(金景瑞): 임진왜란평양성 탈환에 큰 공을 세웠고, 명나라의 요청으로 강홍립(姜弘立)과 후금 정벌 위해 출전하여 심하(深河)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 김극희(金克禧): 명사수로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막하에서 전공을 세우고, 한산도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 김현성(金玄成): 광해군 때 시·서·화에 두루 능하였는데, 그림보다는 글씨에 뛰어났으며 특히 시에 능하였다고 한다. 대표작으로 이충무공수군대첩비문(李忠武公水軍大捷碑文)이 있다.
  • 김완(金完): 임진왜란 때에 남원대첩에 전공을 세우고, 이괄의 난을 평정할 때 벽동(碧潼)의 성(城)을 사수한 명장이다.
  • 김여준(金汝峻): 병자호란청나라에 볼모로 가는 왕자들을 호종한 무신. 중국 심양(瀋陽)에 갈 때 옥하관(玉河關)에서 「월명비안(月明飛雁)」의 시를 읊었다.
  • 김덕승(金德承): 여러 벼슬을 거쳐 목사(牧使)에 이르렀는데, 경사(經史) ·운서(韻書)를 연구하여 중국어에 능통했고, 글씨와 그림에도 능했다.
  • 김우항(金宇杭): 조선 숙종 때 우의정. 신임사화 때에 화를 입었다.
  • 김천택(金天澤): 조선 후기의 시인. 평민 출신으로서 <해동가요(海東歌謠)>를 남기고 「청구영언(靑丘永言)」을 편찬한 인물.
  • 김홍도(金弘道): 조선 영조 때 풍속화의 대가. 도화서 화원이 된 후 왕세손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정조의 어진(御眞)을 그렸다.
  • 김만덕(金萬德): 제주도의 거상
  • 김대건(金大建):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교회 신부. 마카오에서 신학을 배우고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1846년 병오박해로 순교하였다.
근현대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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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선전
구분 인물 소재지
숭선전(崇善殿) 수로왕(首露王)·허황후(許皇后) 경남 김해시 왕릉길 26
숭안전(崇安殿) 가락국 2~9대 왕 경남 김해시 왕릉길 26
덕양전(德讓殿) 양왕(讓王)·계화왕후(桂花王后) 경남 산청군 금서면 동의보감로 995
숭무전(崇武殿) 김유신(金庾信) 경북 경주시 흥무로 71
은월사(隱月祠) 김무력(金武力)·김서현(金舒玄) 울산 남구 중앙로 280번길 5
취서사(鷲棲祠) 김무력(金武力)·김서현(金舒玄)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로 204
서악서원(西岳書院) 김유신(金庾信)·설총(薛聰)·최치원(崔致遠) 경북 경주시 서악2길 23
제동서원(濟東書院) 김유신(金庾信) ·소정방(蘇定方)·이무(李茂) 경북 군위군 효령면 장군당1길 35-1
길상사(吉祥祠) 김유신(金庾信) 충북 진천군 진천읍 문진로 1411-38
화부산사(花浮山祠) 김유신(金庾信)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율곡로 2967
보령원(保寧院) 김유신(金庾信) 전북 부안군 상서면 봉은길 90-5
금산사(金山寺) 김유신(金庾信)·설총(薛聰)·최치원(崔致遠) 경기 화성시 팔탄면 창곡리 언창길 52-19
남악사(南岳祠) 김유신(金庾信)·설총(薛聰)·최치원(崔致遠) 경남 진주시 금곡면 죽곡길 102
부풍사(扶風祠) 김유신(金庾信)·김일손(金馹孫)·김우항(金宇杭) 충남 부여군 규암면 백제운로7
장렬사(壯烈祠) 김유신(金庾信) 광주 북구 동문대로 112번길 99
완산사(完山祠) 김유신(金庾信) 전북 전주시 완상구 빙고리1길 5-2
화산재(華山齋) 김목경(金牧卿) 경북 상주시 화북면 계석동길 23
도유재(道有齋) 김보(金普) 경북 영천시 북안면 도유길 146-1
영모사永慕祠) 김도문(金到門)·김근(金瑾)·김효분(金孝芬)·김진손(金震孫)·김영견(金永堅) 경기도 남양주시 석실로 592번길 77-40
운학재(雲鶴齋) 김영서(金永瑞) 경기 처인구 운학로115번길 22-3
용안사(龍安祠) 김영정(金永貞) 강원 원주시 귀래면 용암동막길 43-14
금병재(錦屏齋) 김영순(金永純) 경남 김해시 장유면 태정2길 30
금소재(金巢齋) 김세응(金世應)·김명수(金明壽)·김학(金鶴)·김조언(金朝彦) 전남 화순군 이양면 쌍산의로 128
호계사(虎溪詞) 김영간(金永幹) 전남 장흥군 장동면 만수길 25-93
구고사(九皐祠) 김진문(金振門)·김완(金完)·김여준(金汝峻)·김여옥(金汝沃) 전남 영암군 서호면 화소길 20
운호사(雲湖祠) 김극희(金克禧)·김함(金涵)·김완(金完)·김여준(金汝俊)·김여옥(金汝沃) 전남 영암군 서호면 꿈바다길 125-19
저산서원(楮山書院) 김관(金管)·김문숙(金文淑)·김항(金伉)·김서(金湑) 경남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유등로332번길 42-7
자계서원(紫溪書院) 김극일(金克一)·김일손(金馹孫)·김대유(金大有) 경북 청도군 이서면 자계서원길 17-7
모암재(慕庵齋) 김서(金湑)·김극일(金克一)·김건(金健) 경북 청도군 각북면 뚝향길 81
영모재(永慕齋) 김맹(金孟)·김일손(金馹孫) 경북 청도군 이서면 행정명곡길 10-19
긍구정(肯構亭) 김용(金勇) 경북 경산시 압량읍 내리길25길 10
송촌사(松村祠) 김사모(金嗣牟)·김억명(金億命)·김억룡(金億龍)·김억호(金億虎) 전남 영광군 군서면 성지로 497
죽곡재(竹谷齋) 김순(金順) 경남 김해시 진영읍 서부로137번길 13-2
삼락재(三樂齋) 김인(金靭) 경북 경산시 자인면 옥천길 65
유현재(惟賢齋) 김대유(金大有) 경북 청도군 매전면 청려로 3926-15
신암재(新菴齋) 김탁(金琢)· 김자진(金至珍)·김천해(金千海)·김호인(金好仁) 등 광주 광산구 기곡길 159-18
용강재(龍崗齋) 김수연(金壽延) 전남 나주시 대호동 262-5
표절사(表節祠) 김손(金遜)·김전(金鈿)·김두(金㺶) 경북 예천군 보문면 미호길 163-14
추모재(追慕齋) 김경신(金敬臣) ·김원현(金元鉉)·김방려(金方勵)·김순생(金荀生) 부산 강서구 상덕로119번길 139-15
미양서원(薇陽書院) 김계금(金係錦) 경남 김해시 진영읍 진영로 430-16
의열사(義烈祠) 김계금(金係錦)·김일개(金一介)·김일덕(金一德)·김일성(金一誠)·김학(金學) 부산 기장군 철마면 와여1길 28-21
월파정(月波亭) 김극검(金克儉)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김해대로 581-15
사현사(四賢祠) 김방려(金方勵)·김계희(金係熙)·김극검(金克儉)·김혼(金渾) 전남 장흥군 안양면 용안로 709-28
금호재(琴湖齋) 김불비(金不比)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동읍로835번길 80
충렬사(忠烈祠) 김경서(金景瑞) 평안남도 용강군 양곡면 남동리
농암사(農巖祠) 김연(金璉) 전남 영암군 영암읍 남풍리 247-1
구산사(龜山祠) 정몽주(鄭夢周)·김소(金炤)·김박(金珀)·김승간(金承幹) 전남 화순군 도곡면 미곡리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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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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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성씨이며, 김씨 중에서도 가장 많은 41.7%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 서울 81만 5천 783명, 부산 40만 7천 41명, 대구 19만 9천 252명, 인천 20만 7천 736명, 광주 14만 8천 736명, 대전 9만 6천 887명, 울산 10만 4천 627명, 경기 71만 8천 661명, 강원 10만 7천 612명, 충북 8만 6천 978명, 충남 14만 151명, 전북 17만 3천 712명, 전남 26만 8천 525명, 경북 23만 7천 826명, 경남 35만 12명, 제주 6만 1천 395명이다. 부산과 경남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2000년 4,124,934명, 2015년 4,456,700명으로 조사되었다.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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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수로왕계 김해 김씨 선김(先金)과 신라 김렴계 김해 김씨는 김해 김씨 후김(後金) 또는 김녕 김씨(金寧 金氏)로 구분한다. 또는 사성 김해 김씨는 우록 김씨(友鹿金氏)라고 한다.

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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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 이성 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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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 동성 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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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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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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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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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해김씨 문경공파 집성촌
  2. 김해김씨 감무공파(사군파), 도사공 김연(金璉)파 집성촌. 낭산 김준연이 이곳 출신이며, 영암군수 김철호가 감무공파(사군파) 대종손이다.
  3. 김해김씨 삼현파 집성촌
  4. 김해김씨 율은공파 집성촌
  5. 김해김씨 좌정승공파 집성촌
  6. 김해김씨 양의공파 집성촌
  7. 삼국유사 2권 가락국기
  8. 조선 연산군대 탁영 김일손(金馹孫)의 사초에 수록한 「조의제문(弔義帝文)」(세조의 왕위찬탈을 비판한 내용)을 빌미로 훈구세력에 의해 일어난 사화
  9. 연산조의 학자 성현은 『용재총화』에서「옛날에는 성했다가 지금은 쇠한」씨족을 지적하는 가운데 김해김씨를 하나로 들고 있다.
  10. 좌정승공파 파조. 김해 김씨의 제주 입도조.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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