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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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행 金元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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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03년 2월 14일 |
사망 | 1772년 8월 5일 |
성별 | 남성 |
국적 | 조선 |
직업 | 학자 |
김원행(金元行, 1703년 2월 14일(음력 1702년 12월 29일)~ 1772년 8월 5일(음력 7월 7일))은 조선 후기의 학자이다. 몽와 김창집의 손자이고 죽취 김제겸의 셋째 아들이다. 5촌 종숙인 김숭겸의 양자로 입적했다. 이재의 제자였으며, 담헌 홍대용의 스승이다. 호는 미호(渼湖)이고 본관은 (신)안동이다.
생애
[편집]경종 초기(1722년~1723년)에 발생한 신임옥사로 조부 김창집과 생부 김제겸이 유배되었다가 처형되었고, 친형 김성행과 친아우 김탄행이 경종의 독살을 꾀한 죄목으로 처형, 그 외에도 일족이 처형되거나 유배되는 등 멸문의 고비를 겪었다. 이후 영조가 즉위하여 가문이 다시 크게 부흥하였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시골에 은거하며 성리학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 저술 활동에만 전념하였다.[1] 그가 길러낸 제자들 중에는 노론계 초기 실학자의 한사람인 황윤석과 홍대용이 있다. 사후 이조판서에 증직 추서되었다.
가족 관계
[편집]- 증조부 : 김수항(金壽恒)
- 부인 : 증 정부인 남양 홍씨
각주
[편집]- ↑ 영조실록 48년(1772 임진 / 청 건륭(乾隆) 37년) 12월 30일(경인) 2번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