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룡
홍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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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풍부원군 | |
신상정보 | |
출생일 | 1794년 11월 6일(음력 10월 13일) |
출생지 | 조선 |
사망일 | 1863년 2월 21일(음력 1월 4일) |
사망지 | 조선 |
국적 | 조선 |
가문 | 남양 홍씨 |
부친 | 홍기섭 |
모친 | 덕수 장씨 장지면의 딸 |
배우자 | 연창부부인 안씨 |
자녀 | 딸 효정왕후 아들 홍종석 아들 홍종선 딸 홍씨 |
홍재룡(洪在龍, 1794년 11월 6일(음력 10월 13일) ~ 1863년 2월 21일(음력 1월 4일[1]))은 조선의 문신이자 국구이다. 헌종의 장인으로, 헌종의 계비 효정왕후의 아버지이다.
생애
[편집]1794년(정조 18) 11월 6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공조판서를 지낸 홍기섭이며, 어머니는 장지면(張至冕)의 딸이다. 본관은 남양(당홍계)[2]이며, 자는 경견(景見)이다.
1831년 3월 6일(순조 31년 음력 1월 22일) 아버지 홍기섭의 배임지인 함열현에서 딸(훗날의 효정왕후)을 낳았다[3]. 1835년(헌종 1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대호군이 되었으며, 1838년 8월 18일(헌종 4년 음력 6월 29일) 창덕궁 인정전에서 열린 한림소시에 뽑히고[4], 1842년 3월 15일(헌종 8년 음력 2월 4일)에는 홍문록에 선발되었다[5]. 이어 성균관 대사성, 이조참판, 병조판서, 금위대장 등 수많은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843년(헌종 9년) 헌종의 정비 효현왕후가 훙서한 이듬해인 1844년(헌종 10년) 순원왕후에 의해 그의 딸이 헌종의 계비로 간택되었으며[6], 이때 홍재룡은 영돈녕부사 및 익풍부원군에, 아내 안씨는 연창부부인에 봉해졌다[7]. 또 아버지 홍기섭의 자급도 한 단계 올라갔다[8].
이후 철종 연간에는 실록청지사가 되어 《헌종실록》의 편찬 책임자가 되었다. 그 외에도 훈련대장 및 어영대장, 수원부유수 및 광주부유수 등을 지내다가, 1863년 2월 21일(철종 14년 음력 1월 4일)에 향년 70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익헌(翼獻)이다. 부인 죽산 안씨와의 사이에서 딸 효정왕후를 비롯해 2남 2녀를 두었다.
가족 관계
[편집]- 본가
- 처가
- 장인 : 안광직 (安光直, 1775 ~ 1861)
기타
[편집]-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에 홍재룡이 쓴 간찰이 전시되어 있다. 이 간찰은 1848년 홍재룡이 다른 관리에게서 물건과 편지를 받자 그에 대해 감사하는 내용이며, 11줄의 행서체로 된 편지글이다[12]. 한편 같은 날 같은 내용으로 아버지 홍기섭이 작성한 간찰도 같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13].
참고 자료
[편집]- 《헌종실록》
- 《철종실록》
- 《남양 홍씨 남양군파 세보》
출처
[편집]- ↑ “남양 홍씨 남양군파 세보 (2003)”.
- ↑ 김성회 (2014년 7월 15일). “中 공공씨 후손이 원수 피해 ‘공’자에 ‘수’자 붙여 홍씨 탄생”. 세계일보. 2016년 7월 19일에 확인함.
- ↑ 고종실록 44권, 고종 41년 3월 15일 양력 2번째기사
- ↑ 헌종실록 5권, 헌종 4년 6월 29일 무술 1번째기사
- ↑ 헌종실록 9권, 헌종 8년 2월 4일 계미 1번째기사
- ↑ 헌종실록 11권, 헌종 10년 9월 10일 갑술 2번째기사
- ↑ 헌종실록 11권, 헌종 10년 9월 10일 갑술 3번째기사
- ↑ 헌종실록 11권, 헌종 10년 9월 12일 병자 2번째기사
- ↑ 고종실록 20권, 고종 20년 4월 22일 임신 2번째기사
- ↑ 《두산백과》〈홍종석〉항목
- ↑ “남양 홍씨 남양군파 세보 (2003)”.
- ↑ 《e뮤지엄》〈홍재룡 간찰〉항목
- ↑ 《e뮤지엄》〈홍기섭 간찰〉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