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키미
쓰키미(일본어:
음력 8월 보름날 달맞이를 하는 풍속은 당나라 때부터 찾아볼 수 있다. 송대의 『동경몽화록』에는 신분에 관계없이 거리를 거닐며 밤새 떠드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풍속이 정관 연간(9세기 하반기)에 일본 귀족사회에 전해졌다. 헤이안 시대의 달맞이는 점차 규모가 커져서, 연희 19년(서기 919년) 우다 법황이 일본 독자적인 십삼야 달맞이를 개최했다. 당시 일본의 달맞이는 시가(詩歌)나 관현(管絃)을 즐기며 술을 마시는 고급진 행사로, 서민들과는 인연이 멀었다. 이 시기의 달맞이는 중국이나 일본 모두 종교적인 요소는 보이지 않고, 달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기는 행사였다.
중국은 명나라 때부터 중추절에 월병을 주고받는 습속이 시작되었다고 전여성의 『희조악사』에 기록되어 있다. 일본은 무로마치 시대에도 달맞이가 계속되었으나, 연회의 본질은 간소해졌고 무로마치 후기에 들어 달을 보고 제물을 올리는 풍습이 생겼다. 『어탕전상일기』에 보면 고요제이 천황이 가지에 뚫은 구멍을 통해 달을 보며 「명월의 축」(名月の祝)을 비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한편, 음력 8월 15일경은 달맞이 풍습이 성립되기 이전부터 원래 토란 수확철이었고, 일본에서도 이 날 토란을 먹는 습속이 있었다. 달맞이가 완전히 세속화된 에도 시대 전기의 기록을 보면 십오야에 이모니(토란찌개)를 먹고 밤새도록 노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 때까지도 달맞이경단을 제물로 바쳤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가정에서 제물을 올리는 습속이 시작되는 것은 에도 중기 이후로 보인다. 에도 후기의 세시기인 『수정만고』를 보면 십오야 날 후즈쿠에(책상) 위에 제단을 차리고 제물로 달맞이경단을 올리는데, 에도에서는 동그랗게, 게이한 지역에서는 토란 모양으로 경단을 빚는다고 적혀 있다.[1]
팔월십오야
[편집]음력 8월 15일 당야에 뜨는 달을 중추의 명월(일본어:
중추 밤에 구름 등으로 인해 달이 가려 보이지 않는 것을 무월(일본어:
팔월십오야 이외의 달맞이
[편집]음력 9월 13일에서 14일로 넘어가는 밤인 구월십삼야는 팔월십오야에 대하여 뒤의 달(일본어:
음력 10월 10일 달은 십일야의 달(十日夜の月)이라 하며, 음력 8월 15일의 “중추의 명월”과 음력 9월 13일의 “뒤의 달”에 대하여 셋째 달(三の月)이라고도 한다. 그 해 수확의 끝을 알리는 달이라고 한다.
날씨에 따라 달을 볼 수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지방에 따라 “달 기다리기”(일본어:
달맞이 명소
[편집]- 일본 3대 달맞이 감상지
- 일본 3대 명월리(名月の里)
- 그 밖의 명소
- 미야기현 미야기군 마쓰시마정 마쓰시마섬
- 도쿄도 지요다구 구단자카
- 미에현 이가시 이가우에노성
- 시가현 히코네시 현궁원
- 교토부 교토시 아라시야마 도게쓰교
- 나라현 나라시 가스가산 미카사산
- 효고현 히메지시 히메지성
-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 이와쿠니성과 킷코공원
- 시마네현 마쓰에시 만간사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鈴木晋一 『たべもの史話』 小学館ライブラリー、1999年、pp127-137
- ↑ “月光に祈る十三夜 - 法華寺観月会”. 《奈良新聞》. 2013년 10월 18일. 2013년 10월 22일에 확인함.
- ↑ 今秋は名月3回 171年ぶり「後の十三夜」出現(中日新聞 2014年9月5日付朝刊1面)
- ↑ 『広辞苑』
- ↑ 가 나 다 “京都歳時記-イベント情報”. 京都外国語専門学校. 2017년 2월 8일에 확인함.
- ↑ 가 나 다 라 마 바 “【今週のお月様】今年最後のフルムーン”. 《ウェザーニュース》. 2016년 12월 13일. 2017년 2월 8일에 확인함.
- ↑ 가 나 다 “「3」を究める”. 《朝日新聞》. 2009년 5월 11일. 2017년 2월 8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