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부석사 조사당
대한민국의 국보 | |
종목 | 국보 제19호 (1962년 12월 20일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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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고려 |
소유 | 부석사 |
주소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
정보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
영주 부석사 조사당(榮州 浮石寺 祖師堂)은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건축물이다. 의상 대사의 초상을 모시고 있다.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 국보 제19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편집]부석사 조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작은 건물이지만 고려시대 건축의 특색을 잘 나타낸다. 지붕은 맞배지붕이고 무량수전과 같은 주심포 양식이지만 소루·주두의 측면이 직선으로 되고 굽받침이 없어지며 첨차의 하단이 다각(多角)으로 잘리는 등 다포집 계통의 요소를 보인다. 1916년 개수시에 발견한 묵명(墨銘)에 의하면 북원(北元) 선광(宣光) 7년, 즉 우왕(禑王) 3년(1377년)에 건립된 것으로 밝혀졌다. 무량수전이나 조사당 모두 송(宋)을 통해 들어온 천축계(天竺系) 양식이거나 그것을 절충한 건물이다.
현지 안내문
[편집]이 건물은 무량수전 우측 위쪽에 위치한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다. 1916년 수리 중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고려 우왕 3년(1377)이 건립연대로 되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1]
조선 성종 21년(1490) 중수하였고, 동왕 24년(1493) 단청을 하였다. 조사당 건물 내부 입구 좌우에 제석천, 범천, 사천왕상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1916년 수리하면서 떼어내어 지금은 보장각에 보관하고 있다.[1]
조사당 전면 처마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선비화는 의상대가 꽂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란 전설이 있다. 부석사 제2의 목조 건물로 고려시대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1]
공포
[편집]조사당의 공포는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로 기둥 위에만 설치한 주심포(柱心包) 양식이며, 건물 자체가 작은 크기이기 때문에, 세부양식이 경내에 있는 무량수전(국보 제 18호)보다 간결하다. 또한 점차 밑 단면을 2단으로 사절한 포작기법은 아직까지도 그 예를 찾아보지 못할 정도로 건축사적으로 중요한 건축 문화재이다.[1]
선비화
[편집]조사당 추녀 아래에 선비화(禪扉花)라고 불리는 골담초 한 그루가 있다. <택리지>에는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한 후 도를 깨치고 서역 천축국(인도)으로 떠날 때 지팡이를 꽂으면서 ‘지팡이에 뿌리가 내리고 잎이 날 터이니 이 나무가 죽지 않으면 나도 죽지 않은 것으로 알라.’고 했다는 내용의 나무가 선비화라 한다. 현재 철장에 둘러싸여 보호되고 있다.[2]
사진
[편집]-
조사당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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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당의 천장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참고 문헌
[편집]- 영주 부석사 조사당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